친구에게
창밖에 봄비가 오네. ‘봄비는 일비, 여름비는 잠비, 가을비는 떡비, 겨울비는 술비’라는 말이 있지.
봄비가 촉촉이 내리면 농부들은 농사일 할 채비로 바빠지고, 여름비엔 낮잠 한숨 자는 것이 최고요, 가을에는 오곡이 익으니 수확해 떡 해먹으면 좋고, 겨울엔 따뜻한 방안에서 친구와 술 한잔 하면 좋겠지.
오늘은 삶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어릴적 6~7살 때였던 것 같애. 마포 신공덕동의 한옥에 살 그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형제들을 참 많이 사랑해주셨지. 부모님은 신공덕동 시장에서 그릇장사 하시느라 바쁘셨고, 덕분에 꼬마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며 부모손을 덜타 자유롭게 지냈던 것 같애.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녀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이다”라는 어느 교육학자의 말이 참 와닿지.
낮에는 골목에서 뛰놀고, 밤에는 옥상에 자리깔고 누워 밤하늘의 빼곡한 별들을 보며 삶의 경이로움에 얼마나 가슴벅찼던 지.....
수많은 골목과 즐비했던 한옥들 그리고 조금만 멀리 걸으면 야산 공터와 큰 동굴도 나왔지. 동굴 어둠 속에는 박쥐들도 많았는데 겁먹지 않고 용기를 내서 그 안으로 들어가 오래 있다가 나오는 게 또래 아이들의 자랑이었어.
1960-70년대 그 시절엔 학원도 과외도 야간자율학습도 없었고, 학생들은 학교수업을 마치면 집에 와서 부모님 심부름을 하거나 주로 자기방에 있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었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개인용 PC도 없었고, TV나 영화도 자주 보기 어려웠지. 환경오염도, 회사구조조정도 몰랐지. 집값도 연소득에 비해 지금처럼 턱없이 비싸지 않았고, 부동산투기도 몰랐어. 다이어트도 헬쓰장도 화장품도 흔치 않았지.
하지만 당시엔 독재시대였고, 일자리도 부족해 실업률이 높았고, 고기반찬도 흔치 않았지. 모두들 가난을 힘겹게 이겨내야 했어.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복종해야했고 자유는 부족했지. 또 지금보다도 더 사회생활에서 나이와 학력, 재산에 따른 서열에 몸을 굽혀야 했고.
그래도 동네주변에는 어디든 공터와 야산이 있었어. 하늘도 강물도 맑았고. 동네엔 미친여자와 울보아이와 욕쟁이 노인, 술꾼이 흔했고, 거지들은 집 대문을 자주 두드렸지. 먹을 것만 해결되면 시간은 바쁘지 않고 지금보다 느릿하게 흐르고 한가로왔던 것 같애.
집안에는 소파도 침대도 식탁도 없었지. 밥먹을 때 밥상은 공부할 때는 책상이 되었어.
안방은 밤에는 침실이 되었다가 찻상, 술상이 들어오면 손님응접실이 되고, 밥상이 들어오면 식당으로 바뀌었지. 신발은 한두켤레면 족했고, 가진 옷도 적었어.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에어컨, 가스렌지, 전자렌지, 정수기, 전기밥솥, 헤어드라이어, 진공청소기, 전화기, 자가용 등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었지. 조명도 백열전구 정도였고.
60년대 한국영화 [돼지꿈](1961)을 보면 그 시절 서울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간소했는지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지.
오늘날 매일 마시는 커피도, 여러 인스턴트 식품도 없었어.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진 이 시대,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 시대, 우리의 삶은 왜 이리 공허해졌을까?
모두들 바쁘게만 살고 있지. 그래서 흐뭇한 추억과 정감을 주는 물건들을 말하고 싶네.
< 정감있는 물건들 >
1. 작은 밥상과 큰 밥상(교자상)
중고로 구입했는데(각각 3~5만원 정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흐뭇해지네. 사진은 직접 찍어 봤어.
밥상색깔이 진한 옻칠색(초콜릿색)이지. 좋아하는 색상인데 가장 한국적인 색깔이라고 하지.
요즘 나오는 나무밥상은 죄다 원목이 아닌 합판목이나 MDF가 많지. 게다가 다리 모양이 모두 한 개씩 펴는 방식이라 디자인이 형편없고. 위 나무밥상들은 1960~7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참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故한창기 선생을 영국의 윌리엄모리스에 버금가는 훌륭한 한국의 아트디렉터(Art Director)로 생각해 왔어.
(아트디렉터 : 공예, 미술, 건축, 음악, 영화 등의 여러 예술영역에서 심미안을 가지고 전체적인 완성을 총지휘하는 사람)
이 분은 1960~70년대에 한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지사장으로 돈을 많이 벌고 나서 한글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창간을 시작으로 많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발굴 복원하는데 거의 전 재산을 쏟아붓고,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을 멋스럽게 사셨던 분이지.
코스모폴리탄(세계인)으로 세계를 활보하며 양복조차 뉴욕의 최고급 양복점에서 지어입던 멋쟁이가 한국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나서 인생을 정반대로 급회전해 살았던 인물이지. 그 분이 [뿌리 깊은 나무]라는 잡지의 표지색으로 북디자이너에게 한국의 전통색깔인 위에 나온 밥상색깔 같은 옻칠(초콜릿) 색상을 요구했고 이를 구하지 못한 편집인이 결국 고생 끝에 구해서 이러한 전통색채가 한국 최초로 잡지 색상으로 구현됐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어. 재미있지.
(한창기 선생에 대해 여기서 길게 말할 수는 없어 아쉽지만 관련 동영상과 한창기 선생과 윌리엄 모리스에 대한 자세한 문서자료도 있으니 혹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 보내줄 게)
2. 나무 빗자루
상품명은 [홈앤미 기러기 방빗자루세트]인데 손에 느껴지는 나무재질의 매끈한 질감과 색상, 편리성 그리고 천연돈모가 훌륭하다고 보여.(가격 1만원대)
조악한 플라스틱 재질의 생활용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 조그만한 나무빗자루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3. 옹기 약탕기와 석유곤로
보고 있으면 어릴적 할머니가 밤새 한약을 다리던 모습이 떠오르곤 해. 석유곤로도 초등학교 4학년 시절까지 집에서 사용했던 기억이 있어. 참 정감있는 물건들인 것 같애. 그래서 옹기만 하나 구입했음.
가끔씩 주변 산에서 약초를 캐다 조금씩 말려두곤 하는데.
익모초, 도깨비바늘(가막살이), 사상자((蛇床子)....
약초는 스텐그릇 말고, 옹기 약탕기에 다려야 약성이 파괴되지 않지. 옹기약탕기를 보고 있으면 자꾸 약초를 다리고 싶어지네.
다릴 때는 가스불인 경우 옹기약탕기가 좋고, 편리하게 전기를 이용하기에는 도자기나 황토로 된 슬로우쿠커가 더 좋다고 보여. 어릴 때부터 집안에 한약 달인 냄새가 나면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좋더라구. 내 몸에 새겨진 행복 유전자란 생각이 들어.
4. 밥상보
밥상보인데 어릴 적에는 많이 썼는데 요즘엔 점점 보기 어려워지더라고. 보고 있으면 왠지 정감이 가지. 인터넷에는 우산처럼 펴서 덮는 제품이 대부분인데 내겐 이런 것들보다 천조각 한 장으로 된 옛스런 밥상보가 더 소박하고 아름다워 보여. 가격도 저렴하고. 조각보는 예술적인 조형미도 뛰어나지. 가난했던 옛날에 버려질 짜투리 천으로 조각보를 만들어 썼던 우리네 선조들의 소박한 마음과 탁월한 예술미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네.
조각보를 ‘동양의 몬드리안(네덜란드 추상화가)’이라고도 부르는 사람도 있어. 내겐 몬드리안의 추상화보다 조각보가 더 아름답게 느껴져.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몇 개의 네모와 기계적인 직선으로만 되어있는데 조각보는 이와 달리 크기도 다양하고 더 자연스러운 직선과 사선 그리고 곡선까지 표현되어 있거든.
내게 만약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이 밥상보를 선물로 줄 생각이야.(인터넷에서 조각보를 검색하면 몇만원 이상으로 되게 비싼 것들이 대부분임. 이 점에서 오늘날 조각보는 이미 조각보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오히려 밥상보야말로 마지막 남은 조각보라고 생각해.)
5. 요강
어릴 적에 도자기로 된 요강을 쓰며 자랐는데 앞으로 언젠가는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 하나 구해뒀어. 도자기 요강이 좋긴 하지만 비싸기도 하고, 무겁고 깨지기도 쉬워 스텐요강으로 구했네. 사용해보지는 않았고, 언젠가는 쓸 날이 있겠지 생각하고 있어. 스텐요강은 오래 앉으면 엉덩이가 조금 아프다고 하네. 그래도 보고 있으면 참 흐뭇해지는 물건이지.
몇백년이 지나 후세들이 이 요강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자못 궁금해져.
서양의 경우 18세기에도 화장실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프랑스궁전 뒤뜰은 비가 오면 오물범벅이었다고 하지. 그래서 나막신이 나왔고, 이것이 부르주아(산업자본가)들의 사교장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나막신의 앞굽이 낮아지고 뒷굽이 높아지면서 오늘날의 하이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하지. 하이힐(빼딱구두)을 신으면 가슴이 앞으로 나오게 되고, 엉덩이는 높이 들리고, 허벅지 근육은 팽팽해져서 남성들을 유혹하는 몸의 라인이 만들어진다고 해. 서양인에게 요강을 보여주면 아마도 신기하게 쳐다보겠지. 우리에겐 이 요강문화가(휴대용 화장실) 수백년도 더 되었는데 말이야. 우리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주는 물건이 아닐 수 없지. 조선시대 꽃가마에도 항상 여인들의 장시간 여행을 위해 손바닥만한 요강이 비치되어 있었다고 하네.(앞으로 드라마에서도 고증을 제대로 해 재현하면 좋다고 보임)
6. 공단 보자기
공단보자기는 한 장에 불과 몇 백원도 하지 않지만 참 사용하기에 쓸모가 많은 물건인 듯해. 금색과 분홍색 보자기가 특히 서민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몇 백년이 지나 후세들이 지금 시대를 기억할 때도 빠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야.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물건이니 말이야.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길을 떠났던 이 땅의 많은 힘없는 사람들을 기억해주고 싶네.
7. 청주(백화수복) 댓병
1년에 백화수복 몇병을 먹은 듯해. 특히 가을 겨울에 주전자에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면 아주 좋아.
소음인은 알콜도수가 높은 독주가 몸에 잘 맞지.(태양인은 쌀막걸리, 소양인은 맥주, 태음인은 소주)
조금씩 마시면 바로 몸에 기혈이 돌고, 몸도 따뜻해지지. 안동소주(약 35도)도 좋은데 백화수복이 더 맞는 듯해. 이걸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됨. 특히 데워먹으니 몸에 더 무리가 없고, 입가와 몸에 밴 청주냄새도 구수하니 좋아.
일본 사케나 시중에 파는 청주보다 백화수복이 더 좋은 듯해. 안주는 마른멸치면 충분하고.
청주 댓병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족, 친구 생각이 나네. 누군가와 한잔 하고 싶어지지.
돈도 사랑도 친구도 건강도 모두 잃었을 때 그 가치를 알게 된다고 하지. 또 행복은 늘 불행과 함께 온다고도 하고.
지금까지의 우리삶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앞으로는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삶이 되었으면 해.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지. 지금은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한없이 소중해지지.
집안에 그리고 몸 가까운 곳에 보기만 해도 흐뭇한 오래된 물건들이 있기를 바래.
늘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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